▲ 매물도에서 바라본 풍경 ⓒ 컨텐츠팩토리

신년을 맞아 심신을 새롭게 해보겠다는 대견한 발상을 안고 ‘매물도’를 찾았었습니다. 장소를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얼마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봤던 ‘소매물도’의 그럴싸한 풍경이 머릿속 깊이 각인 됐던 탓입니다.

하지만 막상 거행한 여행의 실제는 ‘그럴싸한’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꼬박 6~7시간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했고 몸은 피로했으며 통영 어느 여관에서의 숙박은 고단함을 각성시켜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출발할 때의 기특한 마음이 들어찼던 자리는 언제부턴가 알싸한 소주가 대신했습니다.

 

▲ 통영 매물도간 여객선 선내 ⓒ 컨텐츠팩토리

다음날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온갖 사연이 저며진 통영항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흐르자 선실 작은 창문 가득, 매물도가 파도처럼 밀려들어옵니다. 물론 섬에 내려서도 문제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강풍과 높은 파도로 인해 소매물도 정선(停船)장이 파손됐다는 것이었죠.

 

▲ 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섬 ⓒ 컨텐츠팩토리

생각하면 참 안타까울 노릇인데, 당시는 스스로도 이해 안 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유는 고되긴 했으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던 지난 과정이 썩 그럴싸했던 터입니다. 집착을 버리자 ‘섬 한 가운데에서 공을 차면 바다에 빠질 것’ 같은 그 섬이 너무도 고맙고 넉넉하게 다가옵니다. 60~70대가 전부인 섬 노인들이 젊은 이방인에게 보낸 환대 역시도 너무도 고맙고 말입니다.

 

▲ 등산로 갈대숲 ⓒ 컨텐츠팩토리

비록 보고자 했던 소매물도야 못 보았지만, 마음에 더 좋은 것들을 담아온 듯합니다. 명분이 되면 그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에는 가치를 두지 않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일도 의미 있었습니다.

 

▲ 폐창고 창문으로 밀려드는 바다 ⓒ 컨텐츠팩토리

지난 한 해와 올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박사의 논문 역시 과정의 옳고 그름보다는 명분과 결과에만 집착한 데서 비롯된 해프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연초 밀려드는 업무와 앞서 말한 이런저런 고마운 ‘깨달음’에 기대어 올해는 예년처럼의 신년 계획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무 잘라놓은 것 같은 이상적 목표에 앞뒤 안 가리고,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생활하기보단 순간순간 과정을 즐기고, 충실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무계획은 아닙니다. 춥지 않은 날에 그곳에 다시 찾아가볼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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